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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상담내역

안녕하세요.

작성일 : 2020.12.15

안녕하세요. 부산진구 개금3동에 거주중인 24세 여성입니다.

제가 겪고 있는 것이 단순 기분이 아닌 정신적 문제가 맞는지, 질병으로서 도움이 필요한 것인지를 확신할 수 없어서 글을 남깁니다. 이런 곳에 글을 적는 것이 처음이고, 말로 설명하는 것이 더 어지러울 것 같아 적어내리다보니 두서없고 긴 글이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바쁘신 와중에 읽기 피곤하시겠지만 부디 느긋하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서 요약하자면 초등학생때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고, 그로 인한 것인지 학업, 대인관계 등에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 성인이 된 후에는 가정과 취업 등의 문제와 맞물려 이렇게 있으면 안됨을 인지하고 있으나, 두렵고 막막한 감정이 앞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게 단순히 내가 철이 없고 게을러서인지, 정신적으로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입니다.

우선 저는 10년 전(중학교 1학년) 해당 센터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생때 겪었던 따돌림 문제가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온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자살충동 등의 이유로 교내 상담실에서 상담을 받다가 센터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겪었던 학교폭력은 '무관심'이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즈음부터 아이들이 저를 꺼려하기 시작하더니 6학년이 되어서는 노골적으로 무시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교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 학교에서 저를 인지하는건 극소수의 아이들과 선생님들 뿐이었습니다. 그 외의 모든 아이들에게 저는 없는 사람이었고, 닿으면 신체가 오염되고 썩어들어가는 이물질이었습니다. 아무도 저와 책상을 붙이고 싶어하지 않았고, 제가 사용한 물건, 지나간 자리는 오염구역이라 불렸습니다. 유인물은 늘 저를 뛰어넘어 전해졌습니다. 체육시간에는 등 뒤로 흙이나 돌같은 것이 던져졌으며, 가정 시간에 저를 바늘로 찌르던 아이도 있었습니다. 제가 화장실에 가면 따라와서 볼일을 보는지, 손을 씻는지 확인하고 소문내며 깔깔거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급식은 급식 차가 있어서 당번을 정하여 각자의 교실에서 먹었습니다. 밥이며 반찬이며 제대로 받아 본 기억은 없습니다. 생선이 든 국이 나오면 늘 뼈나 찌꺼기만 걸러서 받았고, 반찬은 소스 한방울만 찍어주기도 했습니다. 급식을 다 먹은 날은 돼지였고, 남긴 날은 음식을 버리는 나쁜 애였습니다.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으면 뒤에서 수근거렸습니다. 그래서 늘 후드가 달린 옷을 입고 모자를 뒤집어 쓰고 다녔습니다. 수업시간에는 계속 제가 틀린 답을 적게 유도했습니다. 제가 정말로 답을 틀리면 웃었고, 무시하여 맞추면 욕을 했습니다. 결국 저는 수업시간이면 늘 모자를 뒤집어 쓰고 엎드려있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조별과제는 더욱 끔찍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수업 진도를 따라갈 수 없게 되었고, 그때쯤 시행되기 시작했던 과목별 이동수업(가정, 과학, 영어 등) 역시 문제가 있었습니다. 가정이나 과학 같은 것은 그룹으로 진행하는 일이 많아 어쩔 수 없었지만, 영어 같은 것은 따로 수업을 들었습니다. 수업 참여율이 낮고, 진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항상 교실 뒤쪽 교사실에서 남들보다 훨씬 뒤쳐진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마저도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학교의 어느 곳에 있든 불편했고, 주변의 무관심은 끔찍하게 싫었지만 익숙했고, 선생님들의 관심은 불편하고 낯설기만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사람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맞벌이셨고 한명 있는 언니는 나이차이가 8살 나서, 학원을 가거나 대학에 있었습니다. 세상에 사람은 많은데 제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많이 외로웠습니다. 부모님께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고, 무의미하다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중학교는 여중이라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제 예상보다 제가 적응을 못했습니다. 똑같이 낯선 곳이니 괜찮을 줄 알았는데 저를 쳐다보는게 싫고, 뒤에서 하는 얘기는 모두 험담과 비웃음으로 들렸습니다. 실제로는 그냥 자기들끼리 대화한 것 뿐이겠지만, 저는 늘 불안했습니다. 중1~2학년 때 까지는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고, 저 스스로 거리를 두었습니다. 학교별로 진행했던 우울도 측정 검사?? 같은 것에 제 점수가 안좋게 나와서 교내 상담실에 불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선생님께 "지금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공사를 해서, 옆라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에 올라간 뒤 우리 라인측으로 건너가서 계단으로 내려가야한다. 그렇게 옥상에 올라가면 문득 뛰어내려버릴까, 하는 생각이 든다."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앞부분만 듣고 엘리베이터가 공사해서 죽고싶으냐고 웃으셨는데 저는 아직까지 그 웃음의 의미를 모릅니다. 그저 비즈니스적인 웃음이었을 수도 있고, 저를 안심시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당시의 제가 느낀 것은 비웃음이었고, 그때부터 상담실에서도 무조건 괜찮다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센터에 방문 했을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관심을 기울여주니 부담스럽고, 낯설어서 빨리 그 자리를 피하고만 싶었습니다. 저를 처다보는 눈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괜찮다고만 말했습니다. 상담실도 잘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후는 어찌어찌 소수지만 친구가 생겨 어떻게든 학교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아마 사춘기 학생의 단순 변덕 정도의 헤프닝으로 취급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정말 괜찮아진 것 같았습니다. 소수지만 속할 그룹이 생겼습니다.

고등학교는 되도록 먼 곳에 가고싶었습니다. 근처 인문계로 진학하면 수업 진도 역시 벅찰테고, 기껏 덜 보게 되었던 초등학교 동창들을 마주하게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릴때부터 미술에 흥미가 있었고, 혼자 있을때는 만화 같은 것을 보며 시간을 보냈기에 용호동에 있는 특성화 고교에 진학하고자 했습니다. 동네 미술학원을 다시며 입시를 준비했고, 붙었습니다. 사진과 영상, 3D그래픽 등을 전공으로 하는 과였습니다. 좋았습니다. 그런데 사전 모집일에 학교에 갔더니 초등학교 동창이 한명 있었습니다. 중학교는 갈려 마주칠 일은 없었지만, 가정시간에 저를 바늘로 찌른 아이였습니다. 과학 시간에는 남자 아이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저거 처리해달라며 저를 가르켰던 사람입니다. 과도 다르고 저도 피해다니고 해서 직접적으로 얽힐 일은 없었지만 지나가다 마주치는 것 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렸습니다. 제 살가죽이 다 벗겨져 뒤집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것만 빼면 괜찮았습니다. 재밌게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대학은 서울에 있는 전문학교를 갔습니다. 고3 올라갈 즈음 게임 제작에 흥미가 생겨 관련 진로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관련 유명 대학 여러곳에 원서를 넣었으나 붙은 곳은 저곳 뿐이었습니다. 수능으로 대학을 갈 성적도 못되어서 수시로만 해야했습니다. 그래도 만족했습니다. 게임 기획과에 진학하였고,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이라 오히려 마음이 편했습니다. 집에 있을때보다 훨씬 안정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2학년에 올라가기 전 1년 휴학을 했고, 복학하지 않은 채 자퇴했습니다. 휴학 할 무렵부터 갑자기 제 상태가 좋지 않아졌기 때문입니다. 사회생활이 으레 그렇듯이 마냥 편안할 수는 없겠죠. 나름 즐기고자 하였는데 뜻대로 되지만은 않았습니다. 1학년 1학기 학점은 3.3을 겨우 유지했고 2학기는 제 불찰로 수업에 참여하지 않아 한 과목이 F가 되었습니다. 저는 기획과에 왔는데, 다들 왜 기획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픽이나 디자인을 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제 분수를 압니다. 지금은 기획과에 있으니 상대적으로 잘해 보이는 것이지, 막상 그래픽으로 옮기면 한참 뒤쳐집니다. 뒤쳐지는 것 만큼은 죽어도 싫었기에 어떻게든 기획에서 버텼지만, 저는 역시 뒤쳐지는 사람이었고 한 과목은 심지어 F입니다. 이때 만큼은 오히려 혼자 있다보니 고시텔 단칸방에 틀어박혀 눈썹칼로 팔을 마구 긋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너무 힘들어서, 대학에서 만난 친구 한명에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고 상처를 묻기에 팔을 보여줬더니 친구가 울어버렸습니다. 이런건 처음 듣고 처음 봐서 당황스럽다며 울어버렸습니다. 그 이후로는 미안하기도 하고, 친구를 내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쓴건 아닌가 싶어 말을 아끼게 되었습니다.

휴학을 했고, 타지에 딸을 혼자두기 걱정된다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부산에서 일하던 언니가 이직 겸 서울로 올라와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휴학 후는 집에서 게임만 했던 것 같습니다. 언니도 있으니 밤에 울거나, 혼자 술을 마시거나, 자해같은건 할 수 없었습니다. 함께 있어 좋은 것도 있었으나 그때 만큼은 답답하고 해소되지 않는 것만 넘쳐나 게임으로 풀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서울 관악구 보건소의 정신건강증진센터를 스스로 찾아갔었는데 "모든 문제는 저에게 있으니 제가 스스로 극복해야한다, 운동도 하고 외모도 꾸미고 스스로가 해야한다, 문제는 본인에게 있고 이는 스스로 해결해야하니 주변에서는 도움을 줄 수 없다. 극복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상담이 끝나고부터 집에 가는 길, 집에 와서 까지 계속 울었습니다. 왜 울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중간에 도로에 뛰어들어버릴까 생각도 했으나 자취방에서 기다릴 언니가 보고싶었습니다. 울면서 집까지 갔습니다. 학교를 자퇴했습니다.

자식 둘을 타지에 보내놓으니 어머니 상태가 안좋아졌습니다. 자꾸 충동적으로 물건을 사고, 환불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외에도 여러가지 걱정이 많으신지 썩 좋아보이지 않으셔서 백수인 제가 부산으로 돌아갔습니다.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학원도 다녀보았고, 아르바이트도 계속 했습니다. 무언가 계속 하기는 했는데, 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억도 안나고 스펙도, 자격도, 경험도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작년에는 1년정도 일을 했었습니다. 회사가 너무 별로여서 결국 올 1월 쯤 퇴사했고, 실업급여를 받던 중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아직까지 백수인 상태입니다. 언니와 나이차이가 나는 만큼 저는 늦둥이고, 부모님은 모두 60대 전후입니다. 보통이라면 자식들이 사회에서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 부모님이 노후 준비를 시작할 수 있게 도와줄 나이지만,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비교대상은 엄마 친구 자식들, 대체로 30대 초반쯤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입니다. 언니는 저때문에 서울로 이직하며 새로 취업하였기에 아직 큰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아버지는 최근 허리 수술을 하셨습니다. 친구들은 슬슬 졸업해서 인턴으로 일을 시작할 때입니다. 저 역시 하루빨리 무언가 해야하는데, 경력도 학력도 어떤 스펙도 없습니다. 그마나 그간 모아둔 돈으로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지 않는 것 정도가 소소한 위안입니다.

자주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나를 낳지 않았더라면. 나에게 들었을 돈을 쓰지 않았더라면 이 집은 지금보다 윤택했을겁니다. 어느 순간부터 집에서 받는 모든 것들이 빚처람 느껴집니다. 부모님은 하루빨리 자식들이 성공해서 자신에게 보답해주길 바라니까요. 그럴려고 애써 낳아서 키운겁니다. 제 앞엔 24년치의 빚이 있습니다. 이를 갚아야 합니다.

어릴때부터 잠을 잘 못자던 기간이 있습니다. 빠르면 3개월, 보통 6~8개월 정도의 며칠 혹은 몇주. 악몽을 꾸고 새벽에 2,3번씩 깨는 등 그럴 때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으나 성인이 된 이후로는 다시 시작됐습니다. 정확한 주기는 없고 대충 저정도 시간이 지나면 며칠동안 악몽을 꾸고 새벽에 여러번 깨어나곤 합니다. 이럴 때면 감정이 격해질 때가 많고, 밤마다 혼자 방에서 울곤 합니다. 손으로 팔을 쥐어뜯을 순 없으지 주먹으로 머리를 친 적도 있습니다. 어질어질한게 사념을 치워주는게 어이가 없어서 웃었습니다. 한동안 이러고 나면 또 괜찮습니다. 괜찮아서 그냥 생각없이 놀기만하는 백수가 되어버립니다. 길을 가다 주변에서 웃음 소리가 들리면 덜컥 놀라서 불안해질 때도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비웃고, 외모와 옷, 걸음걸이, 표정 따위의 것을 험담하고 비웃는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이런 생각도 합니다. 차라리 일생 생활을 못할 정도로 아팠으면 좋겠다. 그러면 적어도 지금 나의 이 짓거리에 대한 합리화가 되지 않을까. 문득은 이런 생각도 듭니다. 설거지를 하다가 주방 칼을 보고 대뜸 발등에 던져버릴까? 같은 생각이 들때도 있고, 물을 마시다가 컵을 내동댕이쳐 깨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고, 빨래를 널다가 베란다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입밖으로 낸 적은 없고, 행한 적도 없습니다.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런 생각은 꽤나 자주 드는 것 같습니다. 어쩔때는 화장실 문을 열면 사람이 죽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내 발가락을 보면 위화감이 들때도 있습니다. 대체로 괜찮을때가 많으니까 이런건 그냥 가끔 스트레스가 넘칠때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더욱 모르겠습니다. 제가 철 없고 게으른건지, 무언가 문제가 있는건지. 일시적으로 생겼다가 지나가는 일인지, 계속 되는 일인지. 제대로 알 수가 없어서, 이미 빠른 나이는 아니지만 더 늦어지기 전에 답을 찾고싶어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저는 상담이나 치료가 필요한 사람인가요? 아니면 그냥 게으른 탓에 불평만 늘어놓는 것, 성격이 예민해서 쓸데없는 데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스스로 조금만 신경쓰면 충분히 지나갈 수 있는 걸까요?

지저분하고 긴 글이라 너무 죄송하고, 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답변일 : 2020.12.18


안녕하세요 신혜인님 부산진구정신건강복지센터입니다.

우선 짧지않은 글을 용기내어 남겨주심에 감사드리며, 남겨주신 글을 꼼꼼히 읽어보았습니다.


적어주신 심리정서적 어려움과 여러 상황들에 대해서는 서면으로 질병진단을 내리기에는 한계가 있는 점 양해부탁드리며,

대면을 하더라도 본 센터는 의료기관은 아니므로 진단 및 약물처방이 아닌

선별검사 및 초기상담을 통해 이후 서비스 지원을 돕고 있습니다. (지속상담, 서비스 연계, 병원안내 등)


초등학생 때 겪은 따돌림문제, 또래관계의 어려움에 대해

회복이 이뤄지지 않고 지내다보면 말씀해주신 것 처럼 이후의 과업활동이나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대해 적어주신 내용이 구체적이고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현재도 영향을 받고 계신 것으로 사료됩니다.


또한, 학교생활, 가족과의 관계, 불안정한 수면, 피해적인 사고, 자해 등 풀어내야할 이야기가 많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빠른나이는 아니지만 더 늦어지기 전에 답을 찾고싶다"라고 적어주셨는데 지금도 늦지않았고, 적절한 치료방법을 함께 모색해 볼 수 있습니다.

대면상담이 필요한 상황으로 안내 및 상담예약차 연락드렸으나 부재중이었네요.

통화가 편하신 시간에 ☎051-638-2662 / 내선1 연락주셔서 개금동 담당자를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한번 더 용기내어 꼭 연락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이하 원문 >>

안녕하세요. 부산진구 개금3동에 거주중인 24세 여성입니다.

제가 겪고 있는 것이 단순 기분이 아닌 정신적 문제가 맞는지, 질병으로서 도움이 필요한 것인지를 확신할 수 없어서 글을 남깁니다. 이런 곳에 글을 적는 것이 처음이고, 말로 설명하는 것이 더 어지러울 것 같아 적어내리다보니 두서없고 긴 글이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바쁘신 와중에 읽기 피곤하시겠지만 부디 느긋하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서 요약하자면 초등학생때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고, 그로 인한 것인지 학업, 대인관계 등에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 성인이 된 후에는 가정과 취업 등의 문제와 맞물려 이렇게 있으면 안됨을 인지하고 있으나, 두렵고 막막한 감정이 앞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게 단순히 내가 철이 없고 게을러서인지, 정신적으로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입니다.

우선 저는 10년 전(중학교 1학년) 해당 센터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생때 겪었던 따돌림 문제가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온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자살충동 등의 이유로 교내 상담실에서 상담을 받다가 센터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겪었던 학교폭력은 '무관심'이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즈음부터 아이들이 저를 꺼려하기 시작하더니 6학년이 되어서는 노골적으로 무시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교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 학교에서 저를 인지하는건 극소수의 아이들과 선생님들 뿐이었습니다. 그 외의 모든 아이들에게 저는 없는 사람이었고, 닿으면 신체가 오염되고 썩어들어가는 이물질이었습니다. 아무도 저와 책상을 붙이고 싶어하지 않았고, 제가 사용한 물건, 지나간 자리는 오염구역이라 불렸습니다. 유인물은 늘 저를 뛰어넘어 전해졌습니다. 체육시간에는 등 뒤로 흙이나 돌같은 것이 던져졌으며, 가정 시간에 저를 바늘로 찌르던 아이도 있었습니다. 제가 화장실에 가면 따라와서 볼일을 보는지, 손을 씻는지 확인하고 소문내며 깔깔거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급식은 급식 차가 있어서 당번을 정하여 각자의 교실에서 먹었습니다. 밥이며 반찬이며 제대로 받아 본 기억은 없습니다. 생선이 든 국이 나오면 늘 뼈나 찌꺼기만 걸러서 받았고, 반찬은 소스 한방울만 찍어주기도 했습니다. 급식을 다 먹은 날은 돼지였고, 남긴 날은 음식을 버리는 나쁜 애였습니다.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으면 뒤에서 수근거렸습니다. 그래서 늘 후드가 달린 옷을 입고 모자를 뒤집어 쓰고 다녔습니다. 수업시간에는 계속 제가 틀린 답을 적게 유도했습니다. 제가 정말로 답을 틀리면 웃었고, 무시하여 맞추면 욕을 했습니다. 결국 저는 수업시간이면 늘 모자를 뒤집어 쓰고 엎드려있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조별과제는 더욱 끔찍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수업 진도를 따라갈 수 없게 되었고, 그때쯤 시행되기 시작했던 과목별 이동수업(가정, 과학, 영어 등) 역시 문제가 있었습니다. 가정이나 과학 같은 것은 그룹으로 진행하는 일이 많아 어쩔 수 없었지만, 영어 같은 것은 따로 수업을 들었습니다. 수업 참여율이 낮고, 진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항상 교실 뒤쪽 교사실에서 남들보다 훨씬 뒤쳐진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마저도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학교의 어느 곳에 있든 불편했고, 주변의 무관심은 끔찍하게 싫었지만 익숙했고, 선생님들의 관심은 불편하고 낯설기만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사람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맞벌이셨고 한명 있는 언니는 나이차이가 8살 나서, 학원을 가거나 대학에 있었습니다. 세상에 사람은 많은데 제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많이 외로웠습니다. 부모님께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고, 무의미하다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중학교는 여중이라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제 예상보다 제가 적응을 못했습니다. 똑같이 낯선 곳이니 괜찮을 줄 알았는데 저를 쳐다보는게 싫고, 뒤에서 하는 얘기는 모두 험담과 비웃음으로 들렸습니다. 실제로는 그냥 자기들끼리 대화한 것 뿐이겠지만, 저는 늘 불안했습니다. 중1~2학년 때 까지는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고, 저 스스로 거리를 두었습니다. 학교별로 진행했던 우울도 측정 검사?? 같은 것에 제 점수가 안좋게 나와서 교내 상담실에 불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선생님께 "지금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공사를 해서, 옆라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에 올라간 뒤 우리 라인측으로 건너가서 계단으로 내려가야한다. 그렇게 옥상에 올라가면 문득 뛰어내려버릴까, 하는 생각이 든다."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앞부분만 듣고 엘리베이터가 공사해서 죽고싶으냐고 웃으셨는데 저는 아직까지 그 웃음의 의미를 모릅니다. 그저 비즈니스적인 웃음이었을 수도 있고, 저를 안심시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당시의 제가 느낀 것은 비웃음이었고, 그때부터 상담실에서도 무조건 괜찮다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센터에 방문 했을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관심을 기울여주니 부담스럽고, 낯설어서 빨리 그 자리를 피하고만 싶었습니다. 저를 처다보는 눈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괜찮다고만 말했습니다. 상담실도 잘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후는 어찌어찌 소수지만 친구가 생겨 어떻게든 학교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아마 사춘기 학생의 단순 변덕 정도의 헤프닝으로 취급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정말 괜찮아진 것 같았습니다. 소수지만 속할 그룹이 생겼습니다.

고등학교는 되도록 먼 곳에 가고싶었습니다. 근처 인문계로 진학하면 수업 진도 역시 벅찰테고, 기껏 덜 보게 되었던 초등학교 동창들을 마주하게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릴때부터 미술에 흥미가 있었고, 혼자 있을때는 만화 같은 것을 보며 시간을 보냈기에 용호동에 있는 특성화 고교에 진학하고자 했습니다. 동네 미술학원을 다시며 입시를 준비했고, 붙었습니다. 사진과 영상, 3D그래픽 등을 전공으로 하는 과였습니다. 좋았습니다. 그런데 사전 모집일에 학교에 갔더니 초등학교 동창이 한명 있었습니다. 중학교는 갈려 마주칠 일은 없었지만, 가정시간에 저를 바늘로 찌른 아이였습니다. 과학 시간에는 남자 아이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저거 처리해달라며 저를 가르켰던 사람입니다. 과도 다르고 저도 피해다니고 해서 직접적으로 얽힐 일은 없었지만 지나가다 마주치는 것 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렸습니다. 제 살가죽이 다 벗겨져 뒤집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것만 빼면 괜찮았습니다. 재밌게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대학은 서울에 있는 전문학교를 갔습니다. 고3 올라갈 즈음 게임 제작에 흥미가 생겨 관련 진로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관련 유명 대학 여러곳에 원서를 넣었으나 붙은 곳은 저곳 뿐이었습니다. 수능으로 대학을 갈 성적도 못되어서 수시로만 해야했습니다. 그래도 만족했습니다. 게임 기획과에 진학하였고,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이라 오히려 마음이 편했습니다. 집에 있을때보다 훨씬 안정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2학년에 올라가기 전 1년 휴학을 했고, 복학하지 않은 채 자퇴했습니다. 휴학 할 무렵부터 갑자기 제 상태가 좋지 않아졌기 때문입니다. 사회생활이 으레 그렇듯이 마냥 편안할 수는 없겠죠. 나름 즐기고자 하였는데 뜻대로 되지만은 않았습니다. 1학년 1학기 학점은 3.3을 겨우 유지했고 2학기는 제 불찰로 수업에 참여하지 않아 한 과목이 F가 되었습니다. 저는 기획과에 왔는데, 다들 왜 기획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픽이나 디자인을 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제 분수를 압니다. 지금은 기획과에 있으니 상대적으로 잘해 보이는 것이지, 막상 그래픽으로 옮기면 한참 뒤쳐집니다. 뒤쳐지는 것 만큼은 죽어도 싫었기에 어떻게든 기획에서 버텼지만, 저는 역시 뒤쳐지는 사람이었고 한 과목은 심지어 F입니다. 이때 만큼은 오히려 혼자 있다보니 고시텔 단칸방에 틀어박혀 눈썹칼로 팔을 마구 긋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너무 힘들어서, 대학에서 만난 친구 한명에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고 상처를 묻기에 팔을 보여줬더니 친구가 울어버렸습니다. 이런건 처음 듣고 처음 봐서 당황스럽다며 울어버렸습니다. 그 이후로는 미안하기도 하고, 친구를 내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쓴건 아닌가 싶어 말을 아끼게 되었습니다.

휴학을 했고, 타지에 딸을 혼자두기 걱정된다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부산에서 일하던 언니가 이직 겸 서울로 올라와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휴학 후는 집에서 게임만 했던 것 같습니다. 언니도 있으니 밤에 울거나, 혼자 술을 마시거나, 자해같은건 할 수 없었습니다. 함께 있어 좋은 것도 있었으나 그때 만큼은 답답하고 해소되지 않는 것만 넘쳐나 게임으로 풀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서울 관악구 보건소의 정신건강증진센터를 스스로 찾아갔었는데 "모든 문제는 저에게 있으니 제가 스스로 극복해야한다, 운동도 하고 외모도 꾸미고 스스로가 해야한다, 문제는 본인에게 있고 이는 스스로 해결해야하니 주변에서는 도움을 줄 수 없다. 극복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상담이 끝나고부터 집에 가는 길, 집에 와서 까지 계속 울었습니다. 왜 울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중간에 도로에 뛰어들어버릴까 생각도 했으나 자취방에서 기다릴 언니가 보고싶었습니다. 울면서 집까지 갔습니다. 학교를 자퇴했습니다.

자식 둘을 타지에 보내놓으니 어머니 상태가 안좋아졌습니다. 자꾸 충동적으로 물건을 사고, 환불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외에도 여러가지 걱정이 많으신지 썩 좋아보이지 않으셔서 백수인 제가 부산으로 돌아갔습니다.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학원도 다녀보았고, 아르바이트도 계속 했습니다. 무언가 계속 하기는 했는데, 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억도 안나고 스펙도, 자격도, 경험도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작년에는 1년정도 일을 했었습니다. 회사가 너무 별로여서 결국 올 1월 쯤 퇴사했고, 실업급여를 받던 중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아직까지 백수인 상태입니다. 언니와 나이차이가 나는 만큼 저는 늦둥이고, 부모님은 모두 60대 전후입니다. 보통이라면 자식들이 사회에서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 부모님이 노후 준비를 시작할 수 있게 도와줄 나이지만,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비교대상은 엄마 친구 자식들, 대체로 30대 초반쯤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입니다. 언니는 저때문에 서울로 이직하며 새로 취업하였기에 아직 큰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아버지는 최근 허리 수술을 하셨습니다. 친구들은 슬슬 졸업해서 인턴으로 일을 시작할 때입니다. 저 역시 하루빨리 무언가 해야하는데, 경력도 학력도 어떤 스펙도 없습니다. 그마나 그간 모아둔 돈으로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지 않는 것 정도가 소소한 위안입니다.

자주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나를 낳지 않았더라면. 나에게 들었을 돈을 쓰지 않았더라면 이 집은 지금보다 윤택했을겁니다. 어느 순간부터 집에서 받는 모든 것들이 빚처람 느껴집니다. 부모님은 하루빨리 자식들이 성공해서 자신에게 보답해주길 바라니까요. 그럴려고 애써 낳아서 키운겁니다. 제 앞엔 24년치의 빚이 있습니다. 이를 갚아야 합니다.

어릴때부터 잠을 잘 못자던 기간이 있습니다. 빠르면 3개월, 보통 6~8개월 정도의 며칠 혹은 몇주. 악몽을 꾸고 새벽에 2,3번씩 깨는 등 그럴 때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으나 성인이 된 이후로는 다시 시작됐습니다. 정확한 주기는 없고 대충 저정도 시간이 지나면 며칠동안 악몽을 꾸고 새벽에 여러번 깨어나곤 합니다. 이럴 때면 감정이 격해질 때가 많고, 밤마다 혼자 방에서 울곤 합니다. 손으로 팔을 쥐어뜯을 순 없으지 주먹으로 머리를 친 적도 있습니다. 어질어질한게 사념을 치워주는게 어이가 없어서 웃었습니다. 한동안 이러고 나면 또 괜찮습니다. 괜찮아서 그냥 생각없이 놀기만하는 백수가 되어버립니다. 길을 가다 주변에서 웃음 소리가 들리면 덜컥 놀라서 불안해질 때도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비웃고, 외모와 옷, 걸음걸이, 표정 따위의 것을 험담하고 비웃는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이런 생각도 합니다. 차라리 일생 생활을 못할 정도로 아팠으면 좋겠다. 그러면 적어도 지금 나의 이 짓거리에 대한 합리화가 되지 않을까. 문득은 이런 생각도 듭니다. 설거지를 하다가 주방 칼을 보고 대뜸 발등에 던져버릴까? 같은 생각이 들때도 있고, 물을 마시다가 컵을 내동댕이쳐 깨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고, 빨래를 널다가 베란다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입밖으로 낸 적은 없고, 행한 적도 없습니다.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런 생각은 꽤나 자주 드는 것 같습니다. 어쩔때는 화장실 문을 열면 사람이 죽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내 발가락을 보면 위화감이 들때도 있습니다. 대체로 괜찮을때가 많으니까 이런건 그냥 가끔 스트레스가 넘칠때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더욱 모르겠습니다. 제가 철 없고 게으른건지, 무언가 문제가 있는건지. 일시적으로 생겼다가 지나가는 일인지, 계속 되는 일인지. 제대로 알 수가 없어서, 이미 빠른 나이는 아니지만 더 늦어지기 전에 답을 찾고싶어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저는 상담이나 치료가 필요한 사람인가요? 아니면 그냥 게으른 탓에 불평만 늘어놓는 것, 성격이 예민해서 쓸데없는 데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스스로 조금만 신경쓰면 충분히 지나갈 수 있는 걸까요?

지저분하고 긴 글이라 너무 죄송하고, 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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